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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스라엘 앙숙인 이유 알아보기

by 정보사업24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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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13일 밤(현지시간) 공격용 무인기(드론)와 탄도미사일 100여 기를 발사하며 대(對)이스라엘 공습에 나섰습니다. 지난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영사관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급 지휘관이 사망하자, 12일 만에 보복 작전을 감행한 것인데요 지난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로 위기가 고조돼 온 중동 지역이 결국 전면적 확전 상황까지 맞게 됐습니다

 

이스라엘 이란 관계 사이 안좋은 이유

 

1979년 1월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팔레비 왕정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친미국가였고 미국에게 '중동의 헌병'이란 칭호를 얻었습니다. 또한 당시 최신예기였던 F14 톰캣(현지에서는 알리캣, 현재는 퇴역한 기체이나 이란에는 아직 운용중) 을 받은 국가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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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팔레비 왕정은 '지나친 백인사대주의로 인해 이란 이슬람을 억압/차별/탄압을''백색혁명'이란 미명하에 지속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미국과 친하며 유대인들이 미국의 정재계에 있었기에  당시 미국과 이란과의 무기 협력 체결/군사 협력이 있었던게 아니라 당시는 친미 이란 팔레비 왕정은 이스라엘하고도 군사적인 교류와 협력 관계였었습니다.

당시 팔레비 왕정은 현재 기준으로 '무소불위의 독재' 였었습니다.그러나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호메이니 옹과 그의 지지세력 입장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독재 팔레비 왕정'의 무자비한 탄압이 '그저 미국과 친하다는 이유'로 용인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스라엘도 옆에서 이런 팔레비 왕권을 지지하였기에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 옹이 이슬람 혁명으로 집권하고 나서

'반미' 및 '반이스라엘 주의'로 치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이란은 쉬아파 였지만 팔레스타인에 압제와 탄압을 현재까지 가하는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규탄하면서 반이스라엘의  기치를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팔레비 왕정 때 양국간 우호 관계로 인해 이란으로 국적을 옮겨서 산 유대인들 후손들이 현재도 이란에 존재합니다.) 또한 호메이니 옹은 미국을 '거대한 사탄', 이스라엘을 '미국의 하부의 작은 사탄'이라 공식석상에서 언급한바 있어서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나서 단교 상황에 악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자국 방어를 목적으로 이란 영토를 침공하여 핵시설 의심 구역들올 몇차례 폭격한 바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란도 인근 시리아를 통해 레바논의 쉬아파 민병대이자 현재는 레바논의 정당한 정치 조직이자 정당인 반이스라엘 헤즈볼라를 지원해 현재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혀 오고 있었기에 양국간 사이는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이란이 혁명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서 1980년에서 1988년까지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이란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스라엘이 여기서 자국산 무기들을 아르헨티나로 보내서 은밀히 이라크로 선적 운송을 해서 크게 돈을 벌었고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당시 미국과 함께 사담 후세인에게 필요에 의해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고 판매할 건 판매했습니다. 이 또한 이란과 이스라엘이 사이가 나빠지게 된 요인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란 최고 종교지도위원회의 알리 하메네이도 상기 역사적인 상황들과 이스라엘에 대해서 '암적인 존재'로 공식적으로 언급했기에 양국 관계는 현재도 좋지 못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핵문제로 인한 장기간 걸친 대이란 제재를 하는 미국과 서구 강대국들에게 지지를 지속적으로 해왔기에 이 또한 이란과 이스라엘이 사이가 나쁠 수 밖에 없는요인들 중 하나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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